나는 시 창작 강의 첫 시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시집 목록을 프린트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모두 200권쯤 된다.
내가 강의하는 건물에는 국악과가 있어
가야금이나 거문고 따위를 들고 오르내리는 학생들이 자주 보인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시집이 악기다.
안도현 시인. 연탄재 시인으로 유명하다는데 내겐 어린 감성을 소소한 시어들로 울려준, 김용택 시인과 같은 반열에 있는 분이다.
그분의 시작문법 개론서. 각 장의 표지부터 얼른 책을 읽고싶게, 안달나게 만든다. 아껴가며 읽는다. 수첩에 적어두고 두고두고 보고싶은 글귀가 너무도 많아 차마 다 적지 못하고 책 모서리 한켠을 조심스레 골라 접어두고있다.
1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많이 쓰기 전에, 많이 생각하기 전에, 제발 많이 읽어라. 시집을 백 권 읽은 사람, 열 권 읽은 사람,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 중에 시를 가장 잘 쓸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나는 시 창작 강의 첫 시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시집 목록을 프린트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모두 200권쯤 된다. 내가 강의하는 건물에는 국악과가 있어 가야금이나 거문고 따위를 들고 오르내리는 학생들이 자주 보인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시집이 악기다.
술·연애·시집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독, 다작, 다상량, 즉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이 세 마디의 가르침은 10세기 중국 북송 때의 문인 구양수가 남긴 말이다... 하지만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하기엔 실로 벅차기 짝이 없다. 시간도 많지 않다.
나는 시를 쓰려는 당신에게 색다른 세 가지를 주문하려고 한다.
첫째, 술을 많이 마셔라. 그렇다고 혼자 마시면 안 된다. 술이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이지 주정을 부리기 위한 약물이 아닌 것이다... 주력은 필력이다. (!)
둘째, 연애를 많이 하라. 천하의 바람둥이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무릇 모든 연애는 나 아닌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셋째, 시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많이 쓰기 전에, 많이 생각하기 전에, 제발 많이 읽어라... 좋은 시를 접하지 않고서는 좋은 시를 선별할 수 없으며, 좋은 시를 쓸 수도 없다.
2 재능을 믿지 말고 자신의 열정을 믿어라
천재시인이 과연 있을까? 내가 보기에 천부적으로 문학적 재능을 타고난 시인이란 애초부터 없다.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문학적 재능에 대해 회의하거나 한탄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것은 자신의 게으름을 인정한다는 것과 같다. 시인이 시의 길을 여는 조타수가 되려면 선천적인 재능보다 자신의 열정을 믿어야 한다.
4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는 결별하라.
상투성은 시의 가장 큰 적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재라 하더라도 시인의 미적 인식에 의해 재발견되지 않으면 그것은 시라고 할 수가 없으며 죽은 인식의 되풀이에 불과하다. 죽은 인식은 죽은 언어를 불러온다. 시인의 가장 큰 임무는 죽은 언어를 구별하여 과감히 버리고 살아 있는 언어와 사투를 벌이는 일이다.
5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라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를 택해 쓰느냐는 게 아니다. 그 어떤 소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느냐는 것이다. 모든 시인은 경험한 것에 대하여 쓴다. 하지만 경험한 것을 곧이곧대로 쓰지는 않는다. '무엇'을 쓰려고 집착하지 마라. '무엇'을 쓰려고 1시간을 끙끙댈 게 아니라 단 10분만이라도 '어떻게' 풍경과 사물을 바라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오래 들여다보면 모두 시가 된다" - 이정록
누군가 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시는 사람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사람의 사랑을 노래하면 다 좋은 시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글쎄, 하면서 고개를 흔들 것이다. 또 누군가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람을 지독하게 사랑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한마디 보탤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 쓰려면 '사랑'이라는 말을 시에다 쓰지 말아야 한다고, 제목으로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사랑'이라는 말을 아예 잊어버려야 한다고 훈수를 할 것이다.
8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리고 게을러져라
적막을 사랑하라. 적막에 사로잡힌 적막의 포로가 되라. 적막 속에서 빈둥거리다가 보면 문득 소란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세상의 소란 속으로 단번에 뛰어들지 말고, 가능하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라. 그러다보면 시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13 형용사를 멀리하고 동사를 가까이하라
형용사의 과도한 사용은 시의 바탕이라 할 은유와 상징이 설 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미지가 들어앉을 자리를 형용사가 차지하고 있으면 그 시는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내용이 없고, 그 뜻은 쉽게 드러나지만 깊이가 없어 천박해진다.
16 창조를 위해 모방하는 법부터 익혀라
모방을 배워라. 모방을 배우면서 모방을 괴로워하라. 모방을 괴로워할 줄 아는 창조자가 되라. 모방의 단물 쓴물까지 다 빨아들인 뒤에, 자신의 목소리를 가까스로 낼 수 있을 때, 그때 가서 모방의 괴로움을 벗어던지고 즐거운 창조자가 되라. 모든 앞선 문장과 모든 스승과 모든 선배는 당신이 밟고 가라고 저만큼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들을 징검돌 삼아 그들을 밟고 뚜벅뚜벅 걸어가라. 시인은 모든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이 구성할 임무를 타고난 사람들이므로.
18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시를 가슴으로 쓸 것인가, 손끝으로 쓸 것인가? 작품의 진정성(가슴)을 중요하게 여길 것인가, 표현기술(손끝)에 심혈을 기울일 것인가? 굳이 나누자면 나는 손끝의 문학을 먼저 배운 축에 속한다. 스무 살이 된 나에게 세상은 손끝으로 시를 만드는 일을 회의하게 만들었다. 대학 선배들은 이렇게 말했다. "가슴으로 쓴 시가 진짜 시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시를 쓰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를 살아야 해." 아아, 시를 쓰지도 못하는데 시를 살아야 한다니!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 윤희상, 『소를 웃긴 꽃』, 문학동네, 2007.
20 없는 것을 발명하지 말고 있는 것을 발견하라
시인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발명가'가 아니라 '발견자'에 가깝다고 생각하라. 이미 이 세상에 와 있으나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은 것들이 있다. 보물인데도 보물로 보지 못하고, 숨겨진 의미가 있는데도 의미를 찾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머리를 굴리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시를 기다리지 마라. 발명하려고 하지 말고 발견하도록 애써라. 살갗을 보지 말고 뼛속을 보라.
21 퇴고를 끊임없이 즐겨라
퇴고의 중요성은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습작이란 퇴고의 기술을 익히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퇴고가 외면을 화려하게 만들기 위한 덧칠이 되어서는 안된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위장술이 되어서도 안된다. 퇴고를 글쓰기의 마지막 마무리 단계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퇴고는 틀린 문장을 바로 잡거나 밋밋한 문장을 수려하게 다듬고 고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퇴고는 글쓰기의 처음이면서 중간이면서 마지막이면서 그 모든 것이다.
24 개념적인 언어를 해체하라
시를 쓰는 일은 마음속에 상상력 발전소를 차려 가동하는 일이다. 그 발전소에서 당신은 먼저 머리에 입력된 모든 개념적 언어를 해체하라. 정진규의 말처럼 시는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말을 버리고 '어머니의 고봉밥'이라고 말하는 데서 시작한다. 개념어는 삶을 일반화해서 딱딱하게 만들지만 구체어는 삶을 말랑말랑하고 생기 있게 만든다.
현대창의성연구소 소장 임선하 박사에 의하면창의적 사고의 기능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민감성이다. 주변의 환경에 대해 예민한 관심을 보이는 능력을 이른다.
둘째, 유창성이다. 특정한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이다.
셋째, 융통성이다. 고정적인 사고방식이나 시각 자체를 변환시켜 다양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발상의 전환.
넷째, 독창성이다. 기존의 것에서 탈피하여 참신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이다.
다섯째, 정교성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기존의 아이디어를 보다 치밀한 것으로 발전시키는 능력이다.
창의적 사고의 성향네 가지는 자발성, 독자성, 집착성, 호기심.
때로 상상력 발전소가 이유 없이 정전이 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거나 조급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나는 글렀어, 하고 체념하거나 포기해서도 안 된다. 어둠 속에서는 어둠을 오래 바라보라. 시각이 닫히면 청각이나 후각이 열릴지도 모른다.
25 경이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강은교 시인은 '소유'에 대한 시인의 마음가짐이 남달라야 한다고 매우 이색적인 의견을 제출한다. 즉 시의 성취를 맛보려면 약간의 결핍현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사 풍요한 상태에선 시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것!
좀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잡념이 많은 것도 괜찬은 일이며, 연속극이나 신문 기사 한 줄에도 쉽게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이 오히려 시를 쓸 자격이 있다... - 최영철 시인
자신이 써놓은 글에 스스로 도취해 남들더러 제발 알아달라고 하소연하는 사람은 이명이 있는 아이요, 글의 결점을 남들이 진지하게 알려줘도 버럭 화를 내기만 하는 사람은 코를 고는 시골 사람인 것이다. 시인이여, 누군가 당신 시의 결점을 지적하면 겸손하게 귀를 열고 가만히 들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