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두 얼굴'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11.04 가족의 두 얼굴, 최광현 저, 부키, 2012


가족의 두 얼굴

저자
최광현 지음
출판사
부키 | 2012-02-2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가족은 왜 상처를 주고받는가?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
가격비교

매일 저녁 7시 35분, ebs에서 하는 <달라졌어요>를 시청한다. 부모-자녀 관계, 스승-제자 관계, 직장상사-부하 관계 등 많은 관계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나오는 관계가 바로 가족관계다.

관계 개선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초기에 신청자들은 대개 한 사람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족의 일상을 카메라가 따라다니다 보면, 한 사람에게만 문제가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가족 전체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으며 문제가 발생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없고 너에게만 있는 문제. 하지만 나, 너가 아닌 카메라로 바라볼 때 드러나는 우리의 문제. 결국 가족의 문제는 가족 모두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데서 해결될 수 있다...

이것이 프로그램이 내게 알려준 교훈이다.

다툼, 걱정 없는 가족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우리 가족에게도 문제가 있다. 뭐라 딱 하나로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오래된 문제. 나도 우리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때 발견한 책이 바로 <가족의 두 얼굴>이다.

내 맘속 상처를 가족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내 자신의 상처부터 돌보아야 한다. 어른이 된다는건 나이먹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 맘의 상처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전염되는 상처가 된다...부부가, 부모가 된다는 것에 더 묵직한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 책에서 제시하는 어렵지 않은 해결책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치유라는 말은 상처를 깨끗하게 지워 주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지난날의 상처는  깨끗하게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지난날의 상처로 더 이상 현재의 내 감정을 다치게 하거나 왜곡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많은 사람은 그만큼 상처에 단련되어 그런 경험이 적은 사람보다 상처를 더 잘 극복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않다. 상처를 경험한 사람이 더 아프다. 반면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상처를 적게 받으며 자란 사람이 스트레스에 잘 대처한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많이 받은 사람은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지 못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들은 스트레스 대처 시스템에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릴때부터 부모를 통해서 알게모르게 수많은 의식과 무의식에 형성한다. 뷰모의 가치와 신념을 무조건 믿으며 그것을 당연시 여기며 산다. 부모의 명령과 수많은 뮤의식적인 암시들을 들으며 성장한다. 이런 관념들은 깨어질때까지 절대적 최면으로 작용한다. 최면은 부모와 자녀사이, 부부사이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최면상태를 더욱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성장해서 집을 떠날 때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자신을 건강하게 분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메세지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 

•가족 최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과 자세가 필요하다. 페쇄적인 가족은 언제나 경직되어 있으며 무엇을 하면 안되고, 뮤엇을 해야한다는 엄격한 규칙을 갖고 있다. 또한 겉보기에는 화목해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알 수 없는 불펴남과 긴장, 불안감이 상존한다. 가족 안에 넘을수 없는 분명한 금기들이 존재하지만 이것을 어기거나 쉽게 말로 꺼낼 수 없기에 생기는 불안의 평화이다. 

•그러나 개방적인 가족은 융통성있게 가족의 일상을 움직이기 때문에 가족 모두는 상황에 맞는 유연한 선택을 할 수있다. 가족간에도감정적으로 지적으로 건강하게 분리가 되ㅓ있어 가족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개방적인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동등하고 수평적인 부부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서로의 결정과 선택을 존중하고 유연하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할수 있어야 한다. 부부중에서 누군가 한명이 일방적으로 주도하기보다는 상황에 맞게 각자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가족이 건강한 가족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녀들은 안정감과 편안함을 누린다.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안정감을 지닌 사람은 환상의 방어기제가 필요 없다. 

•보스조르메니 나지는 새로 탄생한 가족은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부부는 자신이 근본적으로 뿌리를 둔 가족 전통과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가족의 위기와 문제는 그 가족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가족의 한계는 바로 태어나고 자란 가족의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위기에 처한 가족을 살펴보면 많은 경우 자신도 모르게 이전 세대의 불행한 모습을 반복하면서 지금의 가족 안에서 이전 세대의 한계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남녀가 서로를 낯설게 여기지 않으면, 즉 상대에게서 자신의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면 편안해지고 끌리는 것이 사랑의 일반적 법칙이다.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외형적인 모습에만 끌리지 않는다. 그 사람의 능력, 외모, 성격, 학벌, 집안 배경, 종교 등 여러 가지를 판단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내 가족의 모습을 재현해 줄 사람에게 강하게 끌린다.

•폭력을 통해 지나친 통제와 억압 속에서 자란 자녀는 자신에 대한 타인의 통제에 대해 무기력하게 반응한다. 가정 내 폭력의 일종인 근친상간을 당한 피해 여성은 남성과 친밀해지는 능력을 상실하고 성인이 되어 문란한 성관계를 갖거나 혹은 지나치게 성관계를 회피하는 양극단으로 종종 내몰린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상처는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자신의 인생을 파괴적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왜 우리는 불행한 경험을 반복하는 걸까? 오늘날 심리학은 불행을 반복하는 행동이 사실은 불행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임을 규명하였다.

•자기파괴적 행동이 꼭 세상을 자포자기하고 자학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의도와 달리 자신을 보듬어 안기보다는 늘 불안과 외로움으로 밀어넣는 그녀의 행동 또한 자기 파괴라 할 수 있다.

•독일의 아동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부모와 아이의 진실한 만남을 이어주는 '붙들어주기 요법'을 창시한 이리나 프레코프는 아이들과 사이가 좋은 아빠는 단순히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다정한 아빠가 아니란다. 무엇보다 아내와 사이가 좋은 아빠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영역은 엄마들의 영역에 속한다. 아빠가 아이들과 사이가 좋으려면 이것을 암묵적으로 지지해주는 엄마가 있어야 한다. 가족 안에서 늘 외롭고 자기 자신이 단지 돈만 벌어다 주는 존재라고 느끼는 아빠들은 빨리 아내와의 관계부터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것을 아내로부터 허용받아야 할 것이다.

•스티얼린은 부모의 못 이룬 한을 해결하기 위해 한번 위임된 자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와 관련해서 '탈출죄'라는 표현을 쓴다. 이것은 자녀가 부모에게 부여받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할 경우 평생을 통해 깊은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이런 희생양과 부모 사이에는 착취 관계가 존재한다. 자녀는 자기의 인생을 살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빼앗기고 결과적으로 착취당한 것이다. 부모에 의해 착취당한 자녀는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결핍 상태로 성장한다. 부모의 욕구를 성취한다고 해서 자녀가 이 결핍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성취는 부모를 위한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 희생양은 부모에게는 '영웅'이 될지 모르나 그 동안 자신을 위한 삶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설사 목표를 이룬 후에도 자신의 삶은 정작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에 다다를 수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수행하지도 못하는 상태에 처한다.
 
•분명 인디언들이 친구를 대하듯이 서로가 서로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 줄수 있다면, 그처럼 아름다운 관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염려스러운 마음에 아무리 대리 역할을 하려 해도 자녀는 자녀일 뿐 부모가 될 수 없다. 가족관계에서 스스로 맡아야 할 그 이상의 역할은 내려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마다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 오히려 가족의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착취'라는 말은 원래 사회학 용어로, 마르크스 주의에서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이 하위의 노동계급의 생산물을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취득함을 뜻한다. 즉 착취는 계급관계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착취는 같은 계급 간에도 심지어는 가족 내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가정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부모가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를 해결하기 위해 자녀를 이용한다면 이 또한 착취라 할 수 있다. 보스조르메니 나지는 이렇게 부모에게 이용당한 자녀가 자신이 당한 것을 다시 되돌려주려 할 때 행사하는 권력을 '파괴적 권리(detructive entitlement)'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 말에 '본전 생각난다'는 말처럼 자기가 당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기보다 못한 대상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흔하다.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을 지낸 며느리가 뒷날 며느리를 맞을 때 쯤에는 똑같이 모진 어머니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급자 시절 폭력에 시달린 군인들이 진급하면 다시 이등병들에게 구타와 얼차려를 일삼는 상급자가 된다. 한국 군대의 고질적인 폭력과 구타, 하급자 괴롭히기의 기저에도 이러한 '파괴적 권리 행사'가 자리 잡고 있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 과거에 받은 상처를 되돌려 주려고 하면 새로운 자녀 세대가 다시 착취 당하고 이용당하게 된다. 이로써 가족 문제는 계속해서 세대를 이어 전수된다.
그런데 남남이 아닌 가족관계에서 이러한 파괴적 행동은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인 가족마저 신뢰할 수 없다는 마음의 고통을 남긴다. 파괴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은 가족을 쓸데없이 힘들게 한다. 무리하고 엄격한 규칙으로 가족을 옭아매고 괜히 힘들게 한다. 얼마든지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는 가족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통해 가족 모두가 고통을 받으며 이로써 가족의 자원이 낭비된다.
 
•배우자의 배반이라는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힘든 위기를 잘 극복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과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또 사건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하기보다 자기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허무주의와 비관주의에서 벗어나 주변과 타인의 따뜻한 관심과 지지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위기 극복에 성공한다.
 
•사람의 관계란 묘한 것이어서 한쪽이 지나치게 주기만 해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받기만 한 쪽은 고마움은 알지만, 관꼐를 청산함으로써 마음의 부담을 털어내고픈 유혹에 시달린다. 따라서 진정으로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으 ㄹ상대에게 주어서는 안된다. 사랑에도 요령이 있다는 것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조건 없이, 아낌 없이 베풀어 주되 상대가 부담을 갖지 않고 다시 내게 되돌려 줄 수 있는 범위를 생각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자아분화가 발달한 사람은 감정을 이성적으로 잘 통제하고 조절한다. 가족은 감정의 덩어리다. 가족 구성원들은 가족 밖에서보다 가족 안에서 더 감정 반사적으로 행동한다.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화를 내고, 이유도 없이 아내와 남편에게 분노를 느끼는 경우가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정을 떠나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 만나는 인간관계라면 설령 분노의 감정을 느껴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살아가면서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 곳 또한 가정이다. 사랑의 둥지인 가정 안에서 큰 상처를 입는다. 가족 간 감정 반사적인 행동이 자주 일어나기에 이런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자아분화는 감정, 특히 그 중에서 불안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능력과 밀접한 관계를 이룬다. 가족은 복합적인 감정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가족 안에서 서로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의 지적 능력, 즉 이성의 힘을 사용해야 한다. 이성의 힘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자아분화 능력이다. 가족에게 불안이 엄습했을 때 자아분화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들은 불안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과잉 행동으로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반면 자아분화가 잘 이뤄진 가족은 불안한 감정을 이성적으로 대응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힘을 지닌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누가 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가보다는 스트레스를 얼마나 잘 다루는가에 있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스트레스와 불안을 건강하게 해소하는 사람이다. 스트레스를 스스로 잘 해결하지 못하고 불안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은 자아분화가 낮은 사람이다. 반면 스트레스에 잘 대응하고 엄습해오는 불안을 잘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자아분화가 높은 사람이다.
결국 자아분화라는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닌 자기 내면 상태이다. 똑같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도 자아분화가 어떠한가에 따라 반응과 대응방식이 다르며 그 결과도 달라진다.
......자아분화가 낮은 사람은 자기는 상대방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를 냈노라고 남을 탓한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자아분화가 높은 사람은 사고와 감정이 균형을 이룬다. 즉각적으로 흥분하고 화를 내기보다 감정적 충동을 이길 수 있는 자제력과 객관성을 갖고 행동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위기와 스트레스를 경험하지만 안정된 정서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건강한 가족관계를 형성한다. 자아분화가 잘 된 사람들이 만나 부부가 되었을 경우 스트레스와 위기 상황에서 배우자나 자녀에게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지 않고 술이나 일 등에 의존하지 않는다. 다른 가족에게 자신의 스트레스를 떠넘기지 않고 건강한 방식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해소한다. 삶의 위기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에 덜 휘둘리며 행복한 가족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자아분화가 발달되지 않은 사람은 주로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쉽게 화를 내거나 실망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또는 다른 사람이 보여 주는 반응에 지나치게 신경쓰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적이거나 반항한다. 불안을 느끼면 느낄 수 록 더욱 충동적이다. 비록 서로 깊이 사랑해서 결혼하였지만 날마다 일어나는 스트레스와 위기 상황 속에서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힘든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자아분화를 성인이 된 지금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스트레스에 대해 즉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먼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불안감을 안겨 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대응한다. 일상 속에서 뜻하지 않게 찾아온 위기와 스트레스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한번 더 생각하려고 애를 쓴다. 지금 느끼는 불안과 분노가 외부 요인 떄문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기인한 것임을 한 번 더 생각하면서 조금은 덜 감정적으로 대응해야 변화가 생긴다. 이것이 낮은 자아 분화를 보완하는 방법이다. 여기에 익숙해질 수록 후회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새로운 가정을 형성하기 전까지 미혼의 시기를 자녀 독립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부모로부터 독립과 자율을 허용받고 미래의 가정을 꾸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독립과 자율성을 보장받은 자녀는 안정된 환경 속에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자기의 모든 에너지를 직업을 구하고 결혼을 준비하는데 충분히 쏟게 된다. 또한 친밀감을 주는 또래집단을 만들어 우정을 만들며 정서적 안정을 추구한다. 이런 사람은 보다 안정적인 결혼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부모에게서 독립과 자율성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자녀 독립기를 다소 암울하게 보낼 수밖에 없으며 결혼생활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성인이 된 자녀는 부모에게서 성인으로 대접받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부모가 자녀를 성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자녀의 결정과 선택을 존중하고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무시하고 여전히 아이처럼 여기고 신뢰하지 않으면 부모 자녀 사이에 지루한 전쟁이 시작된다. 자녀는 부모에게 성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게 된다. 부모와 갈등을 겪고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긴장 관계가 된다. 부모와 자녀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불안과 갈등을 느기며 방황한다. 자녀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를 공격하는 방식은 대개 수동적이고 자학적 성격을 띤다. 무기력한 모습, 학업 저하, 미래에 대한 의욕과 흥미 상실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무기력하게 성인기의 초기를 보낸 자녀는 미래를 의욕적으로 준비할 소중한 기회를 놓친다. 이미 20대 중후반 나이가 되었지만 외형상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무기력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자녀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심리의 부모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너는 엄마 아빠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너는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

  매우 듣기 싫은 말이지만 반복해서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부모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게 된다. 이것을 '내사(introjection)'라 부른다. 부모가 바라보는 방식으로 자신을 대하니 매사 더욱 무기력해지고 무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능하게 행동하는 자녀를 바라본 부모는 자녀에 대해 갖고 있는 신념을 더욱 굳힌다. 자연히 자녀에 대한 통제와 간섭은 더욱 심해지고 자녀가 여기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펴면 비난과 잔소리가 심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별로 없다.

 어떻게 하면 이런 굴레를 끊고 성인이 된 자녀가 독립과 자율성을 얻을 수 있을까? 원래 자녀의 독립에는 부모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부모가 가로막고 방해하면 그만큼 독립과 자율을 성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자녀는 부모를 통해서 세상으로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일 자녀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부모가 원하지 않고 방해한다면, 독립기에 놓인 자녀는 먼저 자기 가족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부모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성장해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어떻게 독립과 자율을 얻었는지 탐색하면 도움이 된다. 많은 경우 답은 거기에 있다. 부모 자신들이 독립과 자율을 어렵게 이룬 경우 자녀에게도 반복시키려는 무의식이 자동한다. 이 숨겨진 매커니즘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진전이 이루어진다. 가족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면 부모에 대한 분노와 원망의 강도가 누그러진다. 부모를 탓하고 상처 받으며 좌절하는 대신 그 한계를 받아들이며 현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가능성을 찾기 시작한다. 비로소 하나의 시련을 넘어 자신의 의지를 갖고 독립과 자율을 얻기 위한 첫 발걸음을 뗄 수 있게 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깨어진 소통을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경청이다. 내 생각을 잘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소통의 출발점이다... 다음으로 진실한 소통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이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그대로 왜곡하지 말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대상에 대해 애정과 증오, 독립과 의존, 존경과 경멸 등 상반되는 감정을 동시에 갖는 양가감정이 드러나는 소통을 이중메시지 또는 이중구속(double bind)이라고 한다.

 

 

 

Posted by 문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