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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07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여름언덕, 2008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저자
피에르 바야르 지음
출판사
여름언덕 | 2008-02-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총체적 독서를 위한 새로운 독서 패러다임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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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명료하고 짧은 문장이 훨씬 잘 읽힌다. 이 책은... 정반대다. 한 문장이 서너줄 간다. 문장을 한번 읽어서는 의미 파악이 어렵다. 문장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을 두세번쯤 반복하고 의미를 곱씹어야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 모든 문장을 곱씹어가며 읽는 건 힘든 일이라, 책의 말미에 가서는 의미를 놓쳤더라도 슬그머니 책장을 넘겨버렸다. 그렇다. 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저자가 말하는 '읽지 않은 경우'처럼 대충 훑고 그 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피에르 바야르는 자신의 책이 그렇게 될 것이란 생각은 해봤을까?

사실 마음에 든 구절을 에버노트에 옮겨놨다가 복사하는 과정에서 홀랑 날라가버렸다. 그러나... 책장을 다시 펼쳐 그 구절들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도서관은 가까우나 이책만큼은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멀리있다.

 

나처럼 이 책을 읽고 싶으나 프랑스 작가의 철학적이고 언어유희적인 글솜씨에 다소 주저하게 되시는 분은, 책을 읽기 전에 EBS 라디오 '북카페'의 <읽지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책과 영화>편을 팟캐스트나 EBS 홈페이지(http://home.ebs.co.kr/bookcafe/index.html)를 통해 들어보시길 권한다. 두 DJ의 오가는 입담을 즐기다보면 책의 흐름을 잡을 수 있고, 철학적인 주제를 멋진 시나리오로 탈바꿈시키는 재치있는 아이디어에 즐거움을 얻는다. 게다가 책도 쉽게 읽혀질 테니, 일석삼조!

 

저자의 접근방식은 정말 매력적이다. 책을 읽지 않은 거나 다름없는 경우들을 나열한다. 실제로 정말 읽지 않고 제목만 들은 경우, 읽었으나 그 내용이 명확하게 머리에 남지 않았거나 이해하지 못한 경우, 읽었으나 오래되어 까먹은 경우 등. 읽은 책을 자꾸만 까먹는 것이 안타까워 에버노트에 적기 시작한 나로서는 너무나 공감가는 예시들이었다.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해 선생님이나 친구들, 혹은 이제 막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 사람, 심지어 책의 저자와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저자가 제시하는 첫번째 방법은 '솔직하라'. 정말 답이다. 책을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얼렁뚱땅 둘러대도 들키지 않을 수 있다 쳐도, 요즘같이 누구나 스마트폰을 갖고다니는 시대에 내가 한 이야기를 바로 검색해보는 사람 앞에서는 몇분 지나지도 않아 빈깡통인 것이 들통날 것이요, 고수 앞에서 알량한 지식을 거짓으로 지어냈다가는 금새 그 바닥이 드러나보일 것이 분명하다.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가장 속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는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 저자가 제시하는 한 가지 방법은 자신의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사실 이건 내가 학창시절 자주 써먹던 방법이다. 방학때면 으레 독서록 써오는 숙제가 있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필독 목록'에 올라 있으면 마치 '베스트셀러'같은 느낌이 들어 괜시리 더 읽기 싫었다. 어쨌든 숙제는 해야하고. 그럴때는 우선 책을 펴서 대충 훑는다. 책장을 넘기다가 눈에 들어오는 단어를 잡거나 목차를 보며 대강의 주제를 파악하고, 그 내용을 소재삼아 내 이야기를 독서록에 담는다.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담아내면 독서록 한장은 금세 채워진다. 마치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소화하지 않았으면서도 방학숙제 이야기로 포스팅 한켠을 채우고 있는 지금처럼!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어떻게 이런 주제로 글을 시작할 생각을 했을까. 저자의 위트에 놀라울 뿐. EBS 라디오 '북카페'에서 윤성원 감독은 이 책을 다 읽고나면 한바탕의 농담에 놀아난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책을 덮을 때 쯤엔, 책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당당해도 된다는 '실체적'(책이 존재하니까) 근거를 얻은 기분도 든다. 한술 더떠서 저자는 책을 제대로 알려면 책에서 멀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책의 어떤 특정한 구절에 사로잡혀서는 책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책에서 거리를 둘 때 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책에 대해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더 잘 알려면 너무 가까이 갈 것이 아니라 멀어져라. 굳이 책에만 적용될 수 있는 말은 아닌것 같다. 불같이 휘몰아치는 감정에 휩싸여 너무 가까운 사이일때는 보이지 않는 그사람의 단점이, 시간이 지나고 서서히 서로의 안정적인 거리를 찾아갈 때 쯤엔 조금씩 보이게 되는 경우. 특정 후보에 대해 맹목적으로 지지할 뿐 조금 떨어져서 그를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 중간고사 기말고사 또다시 중간고사 기말고사 그리고 수능으로 몰아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그 속에 있느라 놓치고 말았던, 그 시기에만 누릴 수 있었다는걸 이제서야 깨닫는 소소한 즐거움들.

작가는 내게 '거리두기'의 긍정적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 책 역시! 읽을 때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아 괴로워하며 책장을 넘겼지만, 다 읽고 나서 시간이 지나 의미를 되새기고 나니 책을 좀더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는 천재인듯 싶다.

 

 

이 책을 읽고나서 피에르 바야르에 매력을 느끼셨다면, 최근 나온 그의 신작,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도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 작가, 정말 독특한 사람이다. 언어 장벽만 넘을 수 있다면 커피한잔 하며 이야기하고 싶다.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저자
피에르 바야르 지음
출판사
다빈치 | 2012-07-0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여행만이 그 세계를 경험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가보지 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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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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