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글 쓸때만 해도 책 링크를 바로 입력할 수 있었는데 어디로 숨은걸까.

 

 

남희 작가님의

"소심하고, 겁많고, 까탈스럽고"

홀로 걷는 길이 외로워 동행을 그리다가도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두려워 거리를 두고 싶어하고

그러면서도 커플의 모습에 눈꼴시려워하기도 하는

내 속을 들킨 것 같은 글이 좋아 남은 책장을 아껴가며 읽었었는데 

 

이번 책에선 작가님이 더이상 혼자가 아니다...

 

누군가는 리뷰에서 남희 작가님 글이 변했다며 중간에 덮었다고도 하던데

난 사모하던 가수님들을 (장가로) 떠나보내며 심지어 그들의 행복을 빌어줄 정도로 단단해진 팬심을 살려

달달한 장면이 날 힘들게 해도 꾹 참고 읽었다.

 

그리고 역시나 좋았다.

 

호주 여행을 준비하며 에버노트를 뒤적이다가, 옮겨적어놓은 밑줄들이 눈에 들어와 여기에 옮겨본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땀이 맺히도록 열심히 썬베드의 타월을 갈아주면서 밝게 웃어주던 칸쿤 리조트의 직원들을 보며

비록 신혼여행이지만 내가 여행을 '휴양'으로 와도 되는걸까, 고민하던게 떠오른다.

사실 칸쿤의 호텔존, 카리브해가 펼쳐진 해변은 그곳 원주민은 이제 쉽게 들어가서 몸담글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해변은 호텔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는 안락하게 카리브해의 바람과 별밤과 여유를 누리고 있지만 내가 누리는 이 호사는 리조트 직원들이 더욱 자본주의 체제에 물들어 갈수록 잘 유지될수 있다.

물론, 가장 자본주의화 된 곳을 직접 골라와서는 그런 의문을 갖고 있다는게 아이러니였지만.

 

호주 여행은 '휴양' 보다는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적당히 좋은 호텔과 함께 끝내주게 멋진 신혼여행지라는 해밀턴 아일랜드를 고르는 순간 휴양으로 기울었다.

이번 여행은 지친 일상에 여권 도장으로 잠시 휴식을 주는 걸로.

다음 여행은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휴양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그러려면 우선 일상이 지치지 않아야 하는게 아닐까 싶지만.

 

여행을 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쌓아온 '생각의 성'에 균열을 만들어냄으로써 더 큰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인데, 여행자로서의 게리의 시선은 여전히 성 안에 머물러있는 게 아닐까. 가장 높은 산을 오르고, 가장 깊은 숲을 걷고, 가장 넓은 바다를 건넌다고 해서 한 사람의 영혼이 그만큼씩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청년이 중동을 여행한다고 친팔레스타인으로 쉽게 변하지도 않으며, 기독교 원리주의자가 여행을 통해 동성애자를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질문도 없이 다니는 여행은 그저 여권에 도장 하나를 늘려가는 일일 뿐이다. 우리의 여행은 사유를 동반하는 여행이어야 한다. 내내 고민하고 질문하고 자신의 세계를 의심하는 여행이어야 한다. 그러니 어쩌면 좋은 여행의 걸음이란 열정이나 해방감, 자유, 이런 것들로 달려가는 발걸음이 아니라, 망설이고, 주저하고, 조심스럽게 내딛는 걸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또한 게리와 같은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내가 이해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해도 그렇게 살아갈수 밖에 없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이해하고 받아들였던가. 한국을 바라보는 게리의 시선은 내가 지금보다 젊고 혈기넘치던 시절에 가난한 나라를 바라보던 시선과 크게 어긋나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지나가는 여행자의 시선, 그것은 순간적이고 표피적인 것만 포착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본 것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여행을 통해 단련된 섬세한 시선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조심스러운 태도와 그들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는 배려가 나에게 충분히 있을까. 여행하는 내내 나는 얼마나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걸까. 
다른 여행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리의 뒷모습을 본다. 게리, 나도 젊을 때는 너처럼 생각했어. 나에게 부럽다고 말하며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볼 때면 용기가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곤 했어. 하지만 한 자리를 지키는 것도 때로는 훌쩍 떠나는 것만큼의 영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 게리, 인간은 꿈을 꿀 수 있는 존재여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꿈이 없이도 평생을 살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꿈이 없는 한 개인을 탓하기 전에 그가 어떤 사회적 배경에서 나고 자랐는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꿈과는 상관없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쓰고 있다는 것을, 꿈을 지닌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이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것도. 게리, 오늘 난 네 덕분에 여행자로서의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어, 고마워.  

 

 

 

Posted by 문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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